혜정교터(惠政橋터)
중학천(中學川) 위에 놓였던 다리로 복청교(福淸橋)
라고도 하며,이곳에서 탐관오리들을 공개적으로 처형 하기도 하였음
종로구 종로1가 광화문우체국 부근에 있던 다리이다.
광화문 북쪽에서 흘러내린 중학천이 청계천으로 유입되는데 종로 쪽에 놓인 다리를 가리키며,
혜교(惠橋)라고도 불렀다.
이 다리 옆에 우포도청이 있었기 때문에 포청다리라고도 불렀고, 조선시대 육조 관아가
집중되어 있는 육조거리 쪽에 있었기 때문에 일명 관가다리라고도 불렀다.
또한 <경도오부북한산성부도>에는 이 다리를 세장교(歲長橋)라고 표기하였고,
1926년 도로를 개수하면서 석교를 콘크리트교로 개수하고 이름을 복청교 (福淸橋)라고 하였다.
이 다리는 태종 12년(1412) 경상 · 전라 · 충청도의 역부를 동원하여 개천공사를 할 때
대광통교와 소광통교 등과 함께 만들어진 다리이다.
장식이 없는 평면의 돌다리인데 이곳에서 탐관오리에 대한 처형을 시행하였다.
팽형(烹刑) 또는 부형(釜刑)이라고 하는 이 형벌은 끓는 가마솥에 죄인을 담그고 삶는
공개형이지만, 실제로 사람을 삶는 것이 아니라 삶는 흉내만 하여 경각심을
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
혜정교에서 시행된 팽형은 탐관오리에게 가하는 제재형인 동시에 부정부패를
제거한다는 전시효과적 의미가 컸다.
이곳은 육조거리와 백성이 많이 모이는 종로거리가 마주치는 곳인 동시에 죄인을
다스리는 우포도청 앞이므로 공개형 터로는 최상의 장소였다.
또한 그 서쪽에는 세종 때부터 해의 그림자로 시각을 아는 앙부일구를 두었는데,
그 때문에 그 부근에 있던 신작로동 송교 혜천 · 피마동 낭후동을 합쳐 앙부일귀의
뜻을 딴 일영대계 (日影臺契)로 불렀다.
혜정교 근처 우물주변의 마을은 혜천동(惠泉洞) · 혜천골 ·혜정교우물골이라고 하였다.
종로구 종로1가 광화문우체국 부근에 있던 다리이다.
광화문 북쪽에서 흘러내린 중학천이 청계천으로 유입되는데 종로 쪽에 놓인 다리를 가리키며,
혜교(惠橋)라고도 불렀다.
이 다리 옆에 우포도청이 있었기 때문에 포청다리라고도 불렀고, 조선시대 육조 관아가
집중되어 있는 육조거리 쪽에 있었기 때문에 일명 관가다리라고도 불렀다.
또한 <경도오부북한산성부도>에는 이 다리를 세장교(歲長橋)라고 표기하였고,
1926년 도로를 개수하면서 석교를 콘크리트교로 개수하고 이름을 복청교 (福淸橋)라고 하였다.
이 다리는 태종 12년(1412) 경상 · 전라 · 충청도의 역부를 동원하여 개천공사를 할 때
대광통교와 소광통교 등과 함께 만들어진 다리이다.
장식이 없는 평면의 돌다리인데 이곳에서 탐관오리에 대한 처형을 시행하였다.
팽형(烹刑) 또는 부형(釜刑)이라고 하는 이 형벌은 끓는 가마솥에 죄인을 담그고 삶는
공개형이지만, 실제로 사람을 삶는 것이 아니라 삶는 흉내만 하여 경각심을
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
혜정교에서 시행된 팽형은 탐관오리에게 가하는 제재형인 동시에 부정부패를
제거한다는 전시효과적 의미가 컸다.
이곳은 육조거리와 백성이 많이 모이는 종로거리가 마주치는 곳인 동시에 죄인을
다스리는 우포도청 앞이므로 공개형 터로는 최상의 장소였다.
또한 그 서쪽에는 세종 때부터 해의 그림자로 시각을 아는 앙부일구를 두었는데,
그 때문에 그 부근에 있던 신작로동 송교 혜천 · 피마동 낭후동을 합쳐 앙부일귀의
뜻을 딴 일영대계 (日影臺契)로 불렀다.
혜정교 근처 우물주변의 마을은 혜천동(惠泉洞) · 혜천골 ·혜정교우물골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경도오부북한산성부도
[네이버 지식백과] 혜정교[惠政橋] (서울지명사전,
2009.2.13,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자료인용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