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피난길에 오르다 1.4후퇴
1950년12월3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은 현 전선을
더 이상 고수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각 부대에 후퇴명령을 하달하였고
서울 시민들에게도 피난령을 내렸다.
서울시민들은 얼어붙은 한강을 걸어서 남으로 발길을 재촉했는데 두 번째로
서울을 버리고 떠나는 고달픈 피난길이었다.
1.4후퇴 당시 서울에 남아 있던 시민의 수는 불과 20만 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서울은 텅 빈 유령 도시로 변했다.
이때 국군과 유엔군도 평택-삼척을 잇는 37도선까지 후퇴하여 전선을 재정리하고
전열을 정비하였다.
1950년12월31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신정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은 현 전선을
더 이상 고수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각 부대에 후퇴명령을 하달하였고
서울 시민들에게도 피난령을 내렸다.
서울시민들은 얼어붙은 한강을 걸어서 남으로 발길을 재촉했는데 두 번째로
서울을 버리고 떠나는 고달픈 피난길이었다.
1.4후퇴 당시 서울에 남아 있던 시민의 수는 불과 20만 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서울은 텅 빈 유령 도시로 변했다.
이때 국군과 유엔군도 평택-삼척을 잇는 37도선까지 후퇴하여 전선을 재정리하고
전열을 정비하였다.
-용산전쟁기념관 자료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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