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사건 [實尾島事件]
실미도는 인천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무인도로, 1968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북파공작원을 양성시키기 위한 특수부대를 만들었던 곳.
1968년 1월 21일 밤10시경, 북한특수부대 124군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까지 침입하였다.
이들 공비들은 우리 군경과의 격렬한 전투 끝에 공비 30명이 사살되었고, 이들 중 생포된 김신조는 "박정희, 목따러 왔수다."라고 말해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박정희 정부는 4월 1일부터 향토예비군을 창설하였으며, 북에 대한 보복으로 평양의 주석궁을 습격하기로 하고 31명의 청년을 불러 모았다.
이들이 격리ㆍ수용되어 지옥 훈련을 받았던 곳이 인천 앞바다의 외딴 섬 실미도이다.
실미도 부대(정식 명칭은 '2325 전대 209 파견대'로 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리기도 함)는 전과자와 민간인으로 꾸려졌으며, 3년여 동안 가혹한 훈련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3년 4개월 동안 출동 명령만을 기다리다가 1970년대 초 남북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북파 임무가 취소됐으며, 이들의 존재가 외부에 공개될 것을 우려한 정부는 기간병들에게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당시 같은 부대에 있던 기간병 24명 가운데 18명이 훈련병들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훈련 중 사망한 7명을 제외한 훈련병 24명은 인천 독배부리 해안에 상륙한 뒤 시내버스를 빼앗아 서울로 향하였다.
그러나 총격전 끝에 대부분의 부대원이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을 하였고 4명만이 생존하였다.
생존자 4명도 1972년 3월 사형당했다.
정부는 이 사건을 북한 무장간첩이 서울을 침입하여 군인들 간의 교전 끝에 이들을 사살한 북한 소행의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발표, 30여 년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북한특수부대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시켜 준 이 사건은 1999년 백동호의 장편소설 <실미도>가 출판되고 그해 연말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어지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한편 이를 바탕으로 한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가 2003년 12월 개봉 한국 최초 10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워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으며, 영화 상영을 계기로 실미도사건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이에 2004년 열린우리당은 실미도사건 희생자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등을 위한 ‘실미도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실미도사건 진상조사를 시작했고, 그해 11월 벽제 서울시립묘지에서 실미도 부대원 유해발굴작업을 벌여 일부 유해를 확인하였다.
그러나 유해발굴과 부대원 확인 작업까지는 마쳤지만 더 이상의 조치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아직도 의문에 싸여 있다.
동의어 684부대
참조어 북파공작원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자료 인용
1.21사태/청와대습격사건/김신조사건/실미도사건/청와대기습미수사건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자료 인용
1.21사태/청와대습격사건/김신조사건/실미도사건/청와대기습미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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